레지오마리애 19

한국의 레지오 마리애 도입

1) 1937년에 중국에 전파된 레지오 마리애는 극히 부진하여 북경에 1~2개 쁘레시디움이 명맥을 유지할 정도였으나 2차 대전 후 중국 교황 대사가 적극 활약하여 급속히 중국 전역에 확산되었다. 2) 1951년 중국 공산 정권에 의해 천주교가 박해를 받아 단원 천여 명이 순교하였고 중국 공산 정부는 성 골롬바노 외방 선교회 신부를 추방하였다. 3) 추방된 신부 중 몇 분이 한국에 입국하였고 그 당시 광주 교구 교구장 서리 현 하롤드 헨리 신부가 1953년 5월 31일 에 목포 산정동 성당에 '치명자의 모후', '평화의 모후' 쁘레시디움을, 경동 성당에 '죄인의 의탁' 쁘레시디움을 최초로 설립하여 첫 주회합을 하였다. 4) 1955년 8월 19일, 당시 광주 대교구장이신 현 하롤드 헨리 주교가 이경재(알렉..

레지오마리애 2021.10.28

레지오마리애 창설 과정

1) 1921년 9월 7일(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 전야) 오후 8시, 더블린 시 프란시스가(街) 마이러 하우스에서 15명(여성 13명, 토허 신부님, 프랭크 더프)이 모여 시작하였다. 2) 여성 회원 중 알리스 기오프가 제일 먼저 도착하여 나름대 로 제대를 차렸는데 이것이 오늘날 레지오 마리애 제대와 같은 모습이었다. 성모상은 반 조반 센터에서 모셔졌던 원 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상이었고, 이때 벡실리움은 없었다. 3) 이 모임의 명칭을 '자비의 모후회'로 결정 하였다. 4) 이 모임의 정신은 그들이 만나는 모든 이들 안에 계신 하느 님의 아들 예수님께 드리는 봉사를 성모님을 통하여, 성모님 과 함께 하려는 것이다. - 가난하고 불쌍한 환자들에게서 '고난을 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'를 발견하기 위함..

레지오마리애 2021.10.28